밀레(Jean-Francois Millet, 1814 - 1875)는 서양화가 중 일반인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화가이다. 얼마 전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전>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로 인해 그는 국내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의 이발소에 가면, 대부분의 이발소에는 시골풍의 산수화 몇 점과,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 그리고 오늘 소개할 <만종>이라는 그림이 걸려있었다. 너무 널리 알려졌다고 해서, 너무 흔하다고 해서 그 위대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비발디의 “사계”가 그리고 밀레의 <만종>이 평가절하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은 이 그림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숨은 의미를 설명하려고 한다.
해질 무렵, 농촌의 들판 한가운데 부부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멀리 뒤편에 서있는 교회에서 들려오는 저녁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이 종소리를 ‘만종’이라고 한다-를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식탁에 앉아 가족들과 오붓하게 저녁을 먹을 시간이지만, 이 부부에게는 그럴만한 여유는 없어 보이며, 먹고살기 위해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복장은 하층 농민의 복장이다. 남자의 신발은 실내화인데, 일할 때에도 신는 것으로 보아 신발이 하나밖에 없는 듯하며, 짧은 바지도 너무 낡아 보인다. 여자는 집에서 일하다가 그대로 나온 듯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이 부부가 오늘 하루 동안 한 일은 감자를 캐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에 있는 바구니 속에는 감자가 몇 개 놓여 있고, 여자의 뒤에 있는 수레의 자루 속에도 감자가 들어있는 것 같다. 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는데, 하루 종일 일한 것치고는 그 수확량이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이들이 수확이 끝난 남의 감자밭에서 버려졌거나, 땅 속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감자를 캐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일한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 속에는 이 부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일했다고 알려주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남자의 머리이다. 기도를 하기 위해 모자를 벗은 남자의 머리는 바로 하루 종일 모자에 눌렸다가 이제 막 드러난 눌린 머리카락의 모양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전체적인 구도는 그림의 상단 1/3 지점의 수평선(이는 밀레 그림의 특징이기도 하다)과 두 부부가 만들어 내는 두 개의 수직선, 그리고 삼지창이 만들어 내는 약간 비스듬한 사선이 만들어 내는 수평적 구도이고, 대기 원근법-멀리 있는 물체를 더 흐리고, 채도를 낮추고, 푸른색을 더 첨가함으로써 원근감을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색채는 청색 바지에서 볼 수 있는 청색계열과, 하늘의 붉은 노을이 이루는 붉은색 계열이 주축인데, 청색은 차분하고도 심원한 느낌을 주며, 붉은색은 이들에게도 열정과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해질 무렵의 빛의 효과와 시적 정감이 넘쳐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숨은 의미가 있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림을 연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최근에는 X-선을 통하여 투시를 함으로써 밑그림이나, 덮어 그려졌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게 됨으로써, 그림의 제작과정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X-선으로 들여다 보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바로 부부 사이에 놓인 몇 개의 감자가 담겨있던 그 바구니의 변화인데, 애초 이 작품에는 감자가 아닌, 보자기에 쌓여있는 죽은 어린 아이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밀레는 먹고살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하는 부모 밑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아이가 그만 죽어버리고, 부부는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늘나라에서라도 그 아이가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장면을 그리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려놓고 나면, “계급갈등을 지나치게 조장하는” 것 같아-당시 시대는 공산주의 선언이 있은 지 10여 년이 지난 시기로, 계급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밀레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아이를 감자로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이렇게 숨겨진 부분까지 알고 나니, 이 작품이 현실의 아픔을 숭고하고 아름답고 시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다시 보일 것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밀레를 일컬어 ‘서구 최초의 민중예술가’라고 지칭하며, 그의 그림이 농민들 편에 서서 계급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시각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밀레는 이데올로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농부의 아들이야. 나는 농부들을 그리지. 그들의 노동에서 나는 신성함을 본다네..”라고. 그는 농부의 아들이었고, 농촌을 사랑했으며, 농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고, 그 속에서 경건함과 신성함을 보았을 뿐이었다.
이 작품을 보며 지금 우리 농촌의 아픈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좋은 글이라 옮겨 보았습니다. Medigate라는 의료인싸이트에 정신과전문의 신동근선생이 쓴 글입니다.)
해질 무렵, 농촌의 들판 한가운데 부부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멀리 뒤편에 서있는 교회에서 들려오는 저녁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이 종소리를 ‘만종’이라고 한다-를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식탁에 앉아 가족들과 오붓하게 저녁을 먹을 시간이지만, 이 부부에게는 그럴만한 여유는 없어 보이며, 먹고살기 위해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복장은 하층 농민의 복장이다. 남자의 신발은 실내화인데, 일할 때에도 신는 것으로 보아 신발이 하나밖에 없는 듯하며, 짧은 바지도 너무 낡아 보인다. 여자는 집에서 일하다가 그대로 나온 듯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이 부부가 오늘 하루 동안 한 일은 감자를 캐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에 있는 바구니 속에는 감자가 몇 개 놓여 있고, 여자의 뒤에 있는 수레의 자루 속에도 감자가 들어있는 것 같다. 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는데, 하루 종일 일한 것치고는 그 수확량이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이들이 수확이 끝난 남의 감자밭에서 버려졌거나, 땅 속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감자를 캐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일한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 속에는 이 부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일했다고 알려주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남자의 머리이다. 기도를 하기 위해 모자를 벗은 남자의 머리는 바로 하루 종일 모자에 눌렸다가 이제 막 드러난 눌린 머리카락의 모양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전체적인 구도는 그림의 상단 1/3 지점의 수평선(이는 밀레 그림의 특징이기도 하다)과 두 부부가 만들어 내는 두 개의 수직선, 그리고 삼지창이 만들어 내는 약간 비스듬한 사선이 만들어 내는 수평적 구도이고, 대기 원근법-멀리 있는 물체를 더 흐리고, 채도를 낮추고, 푸른색을 더 첨가함으로써 원근감을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색채는 청색 바지에서 볼 수 있는 청색계열과, 하늘의 붉은 노을이 이루는 붉은색 계열이 주축인데, 청색은 차분하고도 심원한 느낌을 주며, 붉은색은 이들에게도 열정과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해질 무렵의 빛의 효과와 시적 정감이 넘쳐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숨은 의미가 있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림을 연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최근에는 X-선을 통하여 투시를 함으로써 밑그림이나, 덮어 그려졌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게 됨으로써, 그림의 제작과정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X-선으로 들여다 보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바로 부부 사이에 놓인 몇 개의 감자가 담겨있던 그 바구니의 변화인데, 애초 이 작품에는 감자가 아닌, 보자기에 쌓여있는 죽은 어린 아이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밀레는 먹고살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하는 부모 밑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아이가 그만 죽어버리고, 부부는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늘나라에서라도 그 아이가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장면을 그리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려놓고 나면, “계급갈등을 지나치게 조장하는” 것 같아-당시 시대는 공산주의 선언이 있은 지 10여 년이 지난 시기로, 계급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밀레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아이를 감자로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이렇게 숨겨진 부분까지 알고 나니, 이 작품이 현실의 아픔을 숭고하고 아름답고 시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다시 보일 것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밀레를 일컬어 ‘서구 최초의 민중예술가’라고 지칭하며, 그의 그림이 농민들 편에 서서 계급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시각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밀레는 이데올로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농부의 아들이야. 나는 농부들을 그리지. 그들의 노동에서 나는 신성함을 본다네..”라고. 그는 농부의 아들이었고, 농촌을 사랑했으며, 농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고, 그 속에서 경건함과 신성함을 보았을 뿐이었다.
이 작품을 보며 지금 우리 농촌의 아픈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좋은 글이라 옮겨 보았습니다. Medigate라는 의료인싸이트에 정신과전문의 신동근선생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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