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은 삼삼한 나이가 아니다. 한국에서 비혼여성에게 서른셋은 청춘의 끝을 잡고 모종의 선택을 결심할 나이다. 더 이상 판타지에 한눈팔면서 허비할 시간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여우야 뭐하니>(밤 9시55분)의 고병희(고현정)는 “엊그제 스물세 살이었는데, 낮잠만 잔 건데 일어나니까 서른셋”이라고 말하는 꺼벙이 노처녀다.
△ 고현정의 능숙한 누나 연기와 천정명의 깜찍한 동생 연기는 <여우야 뭐하니>를 끌어가는 힘이다. 이들의 로맨스는 예정된 수순을 거치지만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
그는 “칠칠맞게 나이를 흘리고 다녔나봐”라고 자조하지만 더 이상 흘리고 다닐 시간도 없다. 원래 늦된 그들은 남들이 스물셋에 눈치챈 현실을 서른셋에야 알아차리고 뒤늦게 ‘자기혁명’에 나선다. <청춘의 덫>에서 윤희(심은하)가 배신한 남자를 향해 “부숴버리겠어”라고 독기를 뿜었다면, <여우야 뭐하니>의 병희는 스스로를 향해 “날 부숴버리겠어”라고 혼잣말을 읊조린다. 이제 그들은 변하지 않으면 실패의 나락에 떨어질 운명으로 스스로를 진단하고, 작업전선에 치열하게 뛰어드는 자기혁명에 돌입한다.
신영이와 삼순이를 잇는 장르의 공식
이제 비혼의 삼십대는 하나의 공포가 되었다. 그리고 삼십대 비혼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신영이가 앞장섰고,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가 이어받았고, <여우야 뭐하니>의 병희가 달리고 있다. 그들은 이미 드라마 이전에 위기의 집단으로 우리 안에 각인돼 있으므로, 그들이 자빠질 때 우리는 진심으로 동정하고 그들이 좌절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공감한다. 적당한 리얼리티를 넣어주고, 적절한 코미디만 섞어준다면, 이제 공감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삼십대 비혼여성 드라마는 멜로의 뼈대에 코미디를 섞어서 코믹멜로의 모양새를 띠지만, 실제로 드라마를 밀어가는 힘은 비혼의 공포다. 비혼의 공포가 없다면 그들의 좌충우돌에, 절박함에 리얼리티가 살아나지 않는다.
<여우야 뭐하니>는 장르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노처녀 연애하기를 개발했고, <내 이름은 김삼순>이 노처녀가 연하남과 연애하기로 발전시켰다면, <여우야 뭐하니>는 꺼벙한 노처녀가 ‘새파란’ 연하남과 연애하기로 진화시켰다. 병희와 박철수(천정명)의 9살 차이는 삼순이와 삼식이의 나이차를 훌쩍 뛰어넘는다. 나이차를 강조하면서 커리어의 중요성은 떨어진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신영이에게 방송기자 커리어가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었다면,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에게 파티시에라는 직업이 스스로 쟁취한 무엇이었다면, <여우야 뭐하니>의 병희에게 성인잡지 기자라는 현실은 목표 없이 살아온 이십대의 결과일 뿐이다. 대신 그의 직업은 삼십대 여성의 섹스를 말하는 도구로 쓰인다.
△ 커피우유를 입에 물고 다니는 순진한 노처녀 병희의 좌충우돌은 지나치게 과장되지도, 서글프지도 않아서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
(최소한 드라마의 초반에) 병희는 신영이, 삼순이보다 성에 대해 더 많이 상상하고 더 자주 발설했다.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병희가 철수를 술김에 ‘덮쳐서’ 첫 경험을 하게 되는 사건으로 시작하지 않았는가. 상상신으로 표현되는 병희의 야한 기사는 <여우야 뭐하니>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다르고, <내 이름은 김삼순>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사각관계의 페어플레이 정신
남자 주인공의 사회적 신분도 지상으로 내려왔다. 병희의 남자는 신영이의 남자처럼 의사도, 삼순이의 남자처럼 부잣집 아들도 아니다. 그저 스물넷의 자유인이다. 병희의 남자, 철수는 방금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자동차 수리공. 직업이 지워진 자리를 자유가 메운다. 어쩌면 철수는 진정한 왕자다. 성공 따위야 남들의 일이고, 내키면 여행을 떠나고 알아서 독서를 하며 심지어 와인도 즐기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왕자님, 꽃미남 노마드다. 재력은 없어도 외모가 받쳐주고, 신비의 아우라까지 더해지니 이성이 따르는 것은 당연지사. 이렇게 철수가 일하는 카센터, 병희의 허름한 사무실에 철수의 누나가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까지 더해지면서 <여우야 뭐하니>의 공간은 어떤 삼십대 여성 드라마보다 낮은 곳으로 임한다. <여우야 뭐하니>의 서민 냄새 풍기는 공간은 <여우야 뭐하니>의 이야기가 한 걸음 더 현실로 내려왔음을 상징한다. 물론 드라마에서 상류층의 화려한 면모를 보여주는 서비스는 기본이므로 병희의 여동생 고준희(김은주)의 이야기를 통해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하는 것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디인가. 주인공이 남루한 현실의 공간으로 임하시다니.
인물들도 쿨해졌다. <여우야 뭐하니>에서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들의 사각관계가 형성된다. 여주인공 옆에는 잘생긴 흑기사 배희명(조연우), 남주인공 옆에는 당돌한 아가씨 이주희(서영). 그들은 <내 이름은 김삼순>의 그들처럼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서로를 해하지 않을 듯 보인다(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렇다). 일종의 연애의 페어플레이 정신이랄까, <여우야 뭐하니>에서는 그 페어플레이 정신이 한 발짝 나간다. 다만 남녀 주인공의 나이차를 강조하기 위해 남녀 주인공 옆의 인물들은 주인공과 동년배로 설정된다. 병희의 체온도 뜨겁지 않다. 병희는 신영이처럼 커리어에 집착하지 않고, 삼순이보다 연애에 대한 집념도 적어 보인다. 아직까지 병희는 신영이만큼 좌절하지도, 삼순이만큼 울먹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여우야 뭐하니>는 삼십대 여성의 절박함을 과장하지 않아서 드라마가 심란하지 않다. 심란하지 않아서 편안하다.
고현정의 리얼리티, 천정명의 귀여움
때때로 삼십대 여성 드라마의 공식이 반복된다. 남녀는 사고를 쳤지만, 처음에는 서로에게 무심했다. 서로의 연애상대가 나타나면서 뜻밖에 질투를 느낀다. 그리고 비로소 사랑을 깨닫는다. 이렇게 병희와 철수의 연애담은 ‘안 봐도 비디오’ 같은 흐름으로 흘러왔다. 형식도 새롭지는 않다. 병희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처럼 내레이션으로 혼자말을 읊어대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신영이가 했던 상상 장면을 보여준다. 오드리 헵번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철없는 엄마의 캐릭터도, 성에는 숙맥인 여주인공과 대비되는 성적으로 대담한 여주인공의 자매도 이제는 일종의 클리셰가 돼버렸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PD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작가가 만드는 드라마라는 사실을 모르고 보아도, 삼순이의 향기와 신영이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그래도 물 오른 고현정의 연기가 고병희의 리얼리티에 숨결을 불어넣고, 천정명의 귀여움으로 철수의 캐릭터는 반짝반짝 빛난다. 천정명은 언제나 누나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반짝반짝 빛나는 차돌 같다. 고현정은 살짝 찡그린 표정 하나로, 슬쩍 눙치는 어눌한 말 한마디로 고병희의 어떤 것을 드러내는 능숙한 연기를 선보인다. 누나로 돌아온 고현정과 섹시한 청년으로 성장한 천정명의 호흡은 <여우야 뭐하니>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무엇보다 삼십대 비혼여성 드라마는 아직은 흥겨운 유행가 한 자락이다.
from 한겨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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